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네그리 (문단 편집) == 연구 == 자율주의(autonomia)운동의 창시자 격이며, [[미셸 푸코]], [[자크 데리다]], [[질 들뢰즈]], [[펠릭스 가타리]] 등과 교류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을 종합-계승하여 독자적 철학 영역을 개척했다. 네그리는 다중(multitude)과 [[제국]](empire)에 대한 저작들로 잘 알려져 있다. 그는 현 시대의 상태를 제국[* [[제국주의]]를 의미하지는 않는다.]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는데, 이때 제국이라는 것은 어떤 질서에 대한 여집합을 만들지 않고 모든 것을 내포하려고 하는 세계 질서를 의미한다. [[체 게바라]]가 자본주의와 [[미국]]에 대항해 싸웠지만 사후에는 [[자본주의]]에 의해 아이콘으로써 상품화되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간단하다. 체제에 외부가 없다면 어떻게 변화가 추동되는가 하는 물음에서 도출한 것이 다중이라는 개념이다. 다중은 통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수성의 총체이다. 과거의 [[사회주의]]가 [[프롤레타리아|노동계급]]의 어떤 전형을 설정하고[* 예) 대공장 [[노동자]]]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변화를 추동한다면 네그리의 다중은 현대의 분화된 노동계급들을 총체로써 긍정하고 이들의 자율성이 체제의 변화를 추동한다고 본다. 질 들뢰즈로부터는 상호간에 영향을 다수 받았는데, 두 명은 [[바뤼흐 스피노자]]에 대한 연구로도 권위가 있다. 네그리가 다중 운동과 관련해, 들뢰즈와 가타리의 "리좀" "분자 혁명" 등의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면, 들뢰즈의 "소수-되기"의 정치 철학은 네그리의 다중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.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 운동이나 사회적 협동조합 운동들이 네그리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. 한편으로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이상론에 기댄다고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한 인물이다. [[2011년]] [[아랍의 봄]] 당시 [[2011년 이집트 혁명|이집트 혁명]]을 다중에 의한 정치 혁명이라고 치켜세웠다가 이후 [[이집트]]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뒤이은 [[압델 파타 엘 시시|독재자]]의 출현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자 슬그머니 입장을 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. 이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[[2000년대]] 화제가 되었던 것과 달리 현재에는 그다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.[* 그러나 [[2016년]] [[박근혜 퇴진 운동|촛불시위]] 이후에 잠시 네그리의 다중운동을 촛불 시위를 들어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